스물까지 척척 세고, 달력에서 자기 생일 숫자도 찾아냅니다. 그런데 막상 종이에 써 보라고 하면 3이 거울에 비친 모양으로 나오고, 6을 쓰라고 했는데 9가 나옵니다. 12를 21처럼 순서를 바꿔 쓰기도 합니다. "숫자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뒤집어 쓸까요?" 숫자 쓰기를 막 시작한 집에서 흔히 나오는 걱정입니다.
아이가 숫자를 알아보는 것과 방향까지 맞춰 쓰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생활 속에서 컵은 손잡이가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같은 컵이고, 강아지는 어느 쪽을 보고 있어도 같은 강아지입니다. 아이는 그동안 "방향이 바뀌어도 같은 물건"이라고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숫자와 글자는 이 규칙이 통하지 않는 거의 첫 번째 대상입니다. 3을 뒤집으면 더 이상 3이 아니고, 6을 돌리면 9가 됩니다. 방향이 곧 뜻인 기호를 처음 만난 셈이라, 모양은 기억하는데 어느 쪽을 보고 있었는지는 헷갈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숫자를 뒤집어 쓰는 것만으로 걱정부터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쓰기를 막 시작한 유아 시기에는 흔히 보이는 모습이고, 쓰는 경험이 쌓이면서 대부분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갑니다.
모든 숫자가 똑같이 뒤집히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어떤 숫자에서 헷갈리는지 보면 도와줄 방법이 보입니다.
뒤집힌 숫자를 볼 때마다 지우고 다시 쓰게 하면, 아이는 무엇이 틀렸는지보다 틀렸다는 느낌을 먼저 배웁니다. 몇 번 반복되면 숫자 쓰기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 앞선 글에서 다룬 한글 쓰기와 똑같습니다.
같은 숫자를 한 줄씩 가득 따라 쓰게 하는 것도 기대만큼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줄 첫 칸의 방향이 틀리면 나머지 칸도 틀린 방향으로 연습하게 되고, 옆 칸을 보고 베끼기만 하니 머릿속에서 방향을 떠올리는 연습은 되지 않습니다. 양보다 한두 개를 제대로 떠올려 쓰는 편이 낫습니다.
뒤집힌 숫자를 발견했을 때는 바로 지우게 하기보다 바르게 쓴 숫자를 옆에 나란히 써 보이고 "어느 쪽이 3일까?" 하고 물어보세요. 스스로 찾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틀린 걸 알아보는 눈이 먼저 생기고, 손은 그 뒤를 따라옵니다.
칭찬은 이번에도 결과보다 과정에 해 주세요. "이번엔 출발점을 기억했네", "헷갈려서 숫자표를 봤구나"가 다음에도 스스로 확인하게 만듭니다.
대부분은 쓰는 경험이 쌓이면서 나아지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한참이 지나도 숫자와 글자를 계속 뒤집어 쓰고, 읽기까지 눈에 띄게 힘들어한다면 학습 습관 문제로만 보지 마시고 소아청소년과나 발달·학습 전문가와 한번 상담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학습 조언이며 진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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