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제목도 읽고, 길을 가다 간판도 소리 내서 읽습니다. 그런데 "이름 한번 써 볼까?" 하면 표정이 굳고, 연필을 쥐여 주면 금세 "힘들어", "안 할래"가 나옵니다. "읽기는 되는데 왜 쓰기는 이렇게 싫어할까요?" 한글을 어느 정도 뗀 집에서 자주 듣는 고민입니다.
어른 눈에는 읽을 줄 알면 쓰는 것도 금방일 것 같지만, 아이에게 둘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읽기는 눈앞에 있는 글자를 알아보는 것이고, 쓰기는 머릿속에서 글자 모양을 꺼내 손으로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쓰기에는 한 번에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글자 모양을 기억해야 하고, 획을 어느 쪽에서 긋는지 알아야 하고, 연필을 쥔 손에 힘을 조절해야 하고, 칸 안에 크기까지 맞춰야 합니다. 읽기가 잘 되는 아이일수록 이 차이를 더 크게 느낍니다. 읽을 때는 척척인데 쓸 때는 마음대로 안 되니 스스로 답답해서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이 "싫어"라고 해도, 들여다보면 이유가 다릅니다. 이유에 따라 도와주는 방법도 달라지니 먼저 어느 쪽인지 살펴보세요.
가장 흔한 대처가 따라 쓰기 교재를 사서 매일 한두 장씩 시키는 것입니다. 성실한 방법 같지만, 손이 아직 힘든 아이에게는 같은 글자를 줄지어 쓰는 일이 지루하고 힘들기만 합니다. 몇 주 지나면 교재를 펴는 순간부터 싫다고 합니다.
글씨 모양을 하나하나 고쳐 주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 삐뚤어졌네, 다시"가 반복되면 아이는 쓰기를 혼나는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바르게 쓰는 것보다 쓰는 게 싫지 않은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글씨 모양은 쓰는 양이 늘면서 나중에 다듬어도 늦지 않습니다.
틀리는 게 싫은 아이에게는 부모님이 먼저 일부러 삐뚤게 써 보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엄마도 'ㄹ'은 어렵네" 한마디가 아이의 부담을 꽤 덜어 줍니다.
아이가 조금씩 써 보기 시작하면 칭찬은 글씨 모양보다 시도에 해 주세요. "예쁘게 썼네"보다 "혼자서 끝까지 썼네", "이 글자는 안 보고 썼구나"가 다음에도 연필을 들게 합니다. 틀린 글자가 보여도 그 자리에서 고치기보다, 다음에 같은 글자가 나올 때 한 번 같이 써 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입학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급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쓰기가 싫은 상태로 양만 늘리면 입학 뒤 알림장이나 받아쓰기 앞에서 더 크게 막힐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쓰는 일이 겁나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손이 준비되는 속도는 아이마다 다릅니다. 또래보다 조금 늦는 것 같아도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단추 채우기나 숟가락질처럼 손을 쓰는 다른 일까지 전반적으로 많이 힘들어한다면, 학습 문제로만 보지 말고 소아과나 발달 전문가와 한번 상담해 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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